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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 일렉트릭 (디자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1997-choi 2026. 9. 4.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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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대기자 8만 명.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습니다. 처음 사진을 봤을 때 솔직히 "이게 전기차 맞아?" 싶었는데, 오히려 그 반응이 맞다는 걸 알고 나서야 이 차가 얼마나 영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하드웨어만큼은 흠잡기 어렵고, 소프트웨어만큼은 아쉬움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디자인과 하드웨어: 전기차가 되어도 레인지로버는 레인지로버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을 만들면서 디자인을 거의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릴 형상 일부를 공기역학적으로 다듬고, 휠 디자인을 변경하고, 충전 포트를 추가하고, 배기구를 없앤 것이 전부입니다. 처음에는 성의가 없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제가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이게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1년에 나온 5세대 레인지로버 디자인이 2026년에 봐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가 EQ 라인업을 만들면서 공기저항계수(Cd) 0.20을 달성하겠다며 차를 물방울 형태로 바꿨다가 "이게 무슨 벤츠냐"는 혹평을 들으며 결국 EQ 브랜드를 폐기한 사례를 보면, 브랜드 헤리티지가 강한 회사일수록 전기차라는 이유만으로 디자인을 완전히 뒤집는 건 독이 됩니다. 여기서 공기저항계수(Cd)란 차체가 공기를 가르며 나아갈 때 받는 저항의 비율을 수치화한 것으로, 낮을수록 고속 주행 효율이 올라가는 지표입니다. 레인지로버는 그 함정을 처음부터 피해간 셈입니다.

    배터리와 플랫폼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은 MLA 플렉스(Modular Longitudinal Architecture) 플랫폼을 씁니다. MLA 플렉스란 가솔린, 디젤, 마일드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를 하나의 라인에서 모두 생산할 수 있는 혼용 구조를 말합니다. 전기차 수요가 흔들리는 시장 상황에서 생산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지금 같은 시기에는 분명한 강점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전기차 판매량이 올해 20% 이상 역성장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고(출처: IEA Global EV Outlook 2025), 레인지로버의 핵심 시장이 미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선택은 상당히 현실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배터리는 118.5kWh NCM 셀 344개를 더블 스택 구조로 쌓아 넣었습니다. 더블 스택이란 바닥에 평평하게 모듈을 깔아두는 일반적인 스케이트보드 방식과 달리, 변속기 터널이 있는 공간을 활용해 배터리 모듈을 2층으로 적층한 구조입니다. 덕분에 혼용 플랫폼의 공간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했습니다. 제가 직접 수치를 비교해봤는데, 같은 차급의 BMW iX5가 144kWh, 제네시스 GV90이 123kWh를 탑재한 것과 견주면 절대적인 배터리 용량이 특출나게 크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WLTP 기준 주행가능거리는 600km 이상으로 발표됐고, 국내 환경부 인증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450km 수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800V 시스템 적용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혼용 플랫폼을 쓰는 BMW i7, i5 같은 차들은 아직 400V 시스템에 머물러 있는데, 레인지로버는 이 플랫폼에서 800V를 구현해냈습니다. 800V 시스템이란 기존 400V 대비 충전 전압을 두 배로 높인 아키텍처를 말하며, 같은 충전 출력에서 전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어 케이블 발열이 줄고 충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350kW 급속 충전기 기준으로 10%에서 80%까지 약 22분이면 충전이 가능합니다.

    • 합산 최고 출력 550마력 / 최대 토크 86.7kgm — 레인지로버 역대 최강 토크
    • 제로백 4.5초 / 시속 80→120km 추월 가속 2.7초
    • 최대 45도 경사 등판, 90cm 수심 도강 능력 — 기존 내연기관 모델과 동일
    • 영하 40도~영상 50도 운용 가능, 자체 설계 배터리 셀 및 열관리 시스템 적용
    • 서머시스트(자체 히트 펌프) 적용 — 난방 에너지 40% 절감, 주행거리 40km 추가 확보

    90cm 도강 능력이 전기차임에도 내연기관과 똑같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이건 방수 한계가 아니라 90cm 이상 잠기면 차체 부력 때문에 바퀴가 뜨는 물리적 한계라고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디테일한 이유까지 공식적으로 밝히는 브랜드가 많지 않아서, 오히려 더 신뢰가 갔습니다.

    요약: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은 디자인 변화를 최소화하면서 800V 시스템과 자체 설계 배터리로 하드웨어 완성도를 끌어올린 전기 SUV입니다.

    소프트웨어의 한계: 출시 첫날부터 한 세대 뒤처진 이유

    이 차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여기입니다. 제가 직접 스펙 시트를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하드웨어가 완성도 높게 만들어진 만큼 소프트웨어의 공백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율주행 보조 시스템부터 보면,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에는 앞차와의 차간 거리를 유지하는 어댑티브 크루즈와 차선 중앙 유지 정도의 기본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가 탑재됩니다. ADAS란 카메라, 레이더 등 센서를 이용해 운전자의 판단을 보조하는 시스템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문제는 지금 시장에서 기대하는 수준이 이걸 훌쩍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각각 퀄컴, 엔비디아와 협력해 레벨 2플러스 시스템을 현행 모델에 탑재하고 있습니다. 레벨 2플러스란 운전자가 조건부로 핸들에서 손을 뗄 수 있는 수준의 반자율주행 기능으로, 레벨 2와 레벨 3의 중간 단계를 가리킵니다.

    재규어 랜드로버가 이 기술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이미 엔비디아 하이페리온8 기반의 레벨 2플러스 시스템 개발이 진행 중이고, 차세대 EMA(Electric Modular Architecture) 플랫폼에 탑재될 예정입니다. EMA 플랫폼이란 처음부터 전기차만을 위해 설계된 전용 아키텍처로, 고성능 컴퓨터 몇 개로 차의 모든 기능을 통합 제어하는 차세대 전기·전자 구조를 갖춥니다. 이 플랫폼이 적용되는 첫 번째 모델이 올해 7월 티저가 공개된 레인지로버 GT입니다. 즉, 지금 팔리는 일렉트릭 모델은 그 플랫폼 위에 올라가 있지 않습니다(출처: Land Rover Media).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PIVI Pro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처음 나왔을 때는 LG전자와 협력해 블랙베리 QNX 하이퍼바이저 위에 구축한 이 시스템이 엄청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 전까지 랜드로버 인포테인먼트가 느리고 자주 멈추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써봤는데, 요즘 기준으로는 앱 스토어도 없고 서드파티 앱 설치도 안 되고 생성형 AI 어시스턴트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쟁사들이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를 도입해 스마트폰처럼 개인화가 가능한 인포테인먼트로 전환하고 있는 흐름과 비교하면, PIVI Pro는 이제 조금 시대에 뒤처진 시스템이 됐습니다.

    결국 이 모든 아쉬움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원래 2024년 출시 예정이었던 이 차가 2년 늦어졌다는 것. 배터리 자체 설계에 따른 검증 기간, 그리고 재규어 랜드로버를 5주간 멈춰버린 대규모 사이버 공격과 이에 따른 내부 혼란이 겹쳤습니다. 영국 사이버 모니터링 센터가 추정한 해당 사이버 공격의 경제적 피해는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19억 파운드(약 3조 5천억 원)에 달합니다. 2024년에 나왔다면 레벨 2플러스가 없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 겁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자동차 산업에서 얼마나 무거운 무게인지, 이 차가 직접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약: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의 소프트웨어는 2년 출시 지연으로 인해 레벨 2플러스 자율주행과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없이 출시됐으며, 이는 차기 EMA 플랫폼 모델에서야 해결될 전망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레인지로버 일렉트릭 국내 출시 가격이 얼마나 될까요?

    A. 현재 국내 레인지로버 가솔린 P530 오토바이오그래피가 2억 4,880만 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2억 4,540만 원에 판매 중입니다. 일렉트릭 기본 트림은 이와 비슷한 2억 중반대에 책정될 가능성이 높고, 롱휠베이스 SV 상위 트림은 3억 원을 넘어 4억 원에 근접할 수도 있습니다.

     

    Q. 레인지로버 일렉트릭 국내 기준 주행거리는 어느 정도인가요?

    A. 공식 발표 기준 WLTP 주행가능거리는 600km 이상입니다. 국내 환경부 인증 기준은 통상 WLTP 대비 75% 수준으로 적용되므로, 국내에서는 약 450km 안팎의 인증 거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Q. 레인지로버 일렉트릭 충전 속도는 얼마나 빠른가요?

    A. 800V 시스템을 채택해 350kW 급속 충전기 기준으로 배터리 10%에서 80%까지 약 22분 만에 충전이 가능합니다. 현대차 그룹의 800V 전기차들과 동일한 수준의 충전 속도입니다.

     

    Q. 기존 레인지로버 오너라면 일렉트릭으로 바꿀 만한가요?

    A. 디자인과 실내 공간, 오프로드 성능은 기존 모델과 사실상 동일하고 성능은 더 올라갔습니다. 다만 자율주행 보조와 인포테인먼트 측면에서는 경쟁 모델 대비 한 세대 뒤처진 느낌이 있어, 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보는 분이라면 차세대 EMA 플랫폼 기반 모델까지 기다리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Q. 배터리는 어느 회사 제품이 들어가나요?

    A. 랜드로버가 공식적으로 셀 제조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현장을 취재한 외신에 따르면 초기 물량은 중국 인비전 그룹 계열의 AESC에서 셀을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물량은 모회사 타타 그룹의 배터리 자회사 아그라타스가 영국 서머셋 공장에서 생산한 셀로 전환될 예정이며, 배터리 팩 조립과 설계는 랜드로버 울버햄튼 공장에서 직접 진행합니다.

     

    결론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은 하드웨어만 놓고 보면 거의 흠을 찾기 어렵습니다. 영하 40도에서 영상 50도까지 버티는 배터리를 직접 설계하고, 혼용 플랫폼에서 800V 시스템을 구현하고, 90cm 도강에 제로백 4.5초를 뽑아낸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 정도 하드웨어 완성도면 충분히 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레벨 2플러스 자율주행 부재와 PIVI Pro의 세대 한계는 지금 전기차를 고를 때 분명히 따져봐야 할 지점입니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가능성까지 고려해 구매를 결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레인지로버의 승차감과 디자인, 그리고 전천후 성능이 최우선 조건이라면 충분히 살 만한 차입니다. 반면 자율주행과 차세대 인포테인먼트를 중시한다면, EMA 플랫폼 기반의 레인지로버 GT를 기다리는 쪽이 더 맞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07TZ_I4L4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