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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슈퍼카라는 말에 기대보다 의심이 앞섰거든요. 그런데 실물을 눈앞에 두는 순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드마크로스의 에픽 GT1은 GS 그룹 창업자 증손자인 허자홍 대표가 직접 구상하고, 캐나다의 전문 제조사 멀티매틱과 함께 완성한 전 세계 단 한 대짜리 국산 하이퍼카입니다.

"에픽GT1"국산 슈퍼카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봤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차를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대부분은 상상에서 끝나지만, 허자홍 대표는 그것을 실제로 해냈습니다.
어릴 때 람보르기니 쿤타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키웠던 꿈, 도쿄의 포르쉐 매장에서 느꼈던 획일화에 대한 아쉬움이 에픽 GT1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그 차를 보면서 느낀 건, 이게 단순한 재력 과시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오랜 공부와 집착이 없으면 저 디테일들은 나올 수가 없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에픽 GT1의 제작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한 곳은 캐나다의 멀티매틱(Multimatic)입니다. 멀티매틱은 메르세데스-AMG ONE과 애스턴마틴 발키리 자가토의 바디 설계를 담당한 하이퍼카 전문 제조사입니다. 허자홍 대표가 전체 디자인 스케치와 구체적인 구성 방향을 제시하면, 멀티매틱이 실제 부품 선정과 구조 완성을 맡는 방식으로 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쉽게 말해 기획과 방향은 허자홍 대표, 엔지니어링 구현은 멀티매틱이었던 셈입니다.
외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르망 레이싱카의 실루엣을 그대로 계승한 바디 라인이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구세대 포드 GT와의 유사성이 느껴졌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에어덕트와 펜더 라인의 조합이 훨씬 더 레이싱카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2010년 출시 당시 목표 가격은 16억~17억 원 수준이었으며(출처: 드마크로스 공식 홈페이지), 전 세계 단 한 대라는 희소성을 고려하면 현재 가치는 그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으로는 알 수 없었던 구조의 진짜 완성도
일반적으로 국내 자동차 제조 시도는 외관만 그럴듯하고 내부 구조는 기성 부품의 단순 조합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제 생각도 처음엔 비슷했는데, 실제로 들여다보니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에픽 GT1의 섀시는 카본 터브(Carbon Tub)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카본 터브란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운전석 주변을 감싸는 일체형 구조물로, 충돌 시 앞뒤 크럼플 존은 충격을 흡수하며 떨어져 나가지만 운전자가 앉아 있는 공간은 원형을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F1을 포함한 레이싱카에서 핵심 안전 기술로 쓰이는 구조인데, 이것이 에픽 GT1에 그대로 적용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운전석에 앉아보니 카본 터브 특유의 높은 사이드 턱 때문에 마치 욕조 안에 들어앉은 것 같은 협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편하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이 공간이 나를 지켜준다는 감각이 먼저 왔습니다.
서스펜션은 푸시로드 타입(Push-rod Suspension)을 채택했습니다. 푸시로드 타입이란 쇼크업소버(댐퍼)가 수직으로 서 있는 일반 방식과 달리, 댐퍼가 수평으로 누운 채 로커암을 통해 바퀴의 움직임을 전달받는 구조입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비용도 높지만, 바퀴의 움직임이 서스펜션으로 전달되는 응답성이 극도로 빠르기 때문에 레이싱카와 하이퍼카에 주로 사용됩니다. 아벤타도르가 같은 방식을 쓴다는 걸 알고 나서 에픽 GT1의 서스펜션 구조를 다시 보니, 이 차가 얼마나 진지하게 설계되었는지 실감이 났습니다.
엔진은 미국 로시(Roush)의 5.4리터 V8 슈퍼차저 유닛으로, 구세대 포드 GT에 탑재된 엔진과 유사한 계통에서 출발해 강화된 버전입니다. 최고출력 857마력, 제로백 3.1초, 6단 수동변속기 조합입니다. 시동을 거는 방식도 레이싱카 그대로였습니다. 배터리 킬 스위치를 꽂아 돌린 뒤, 클러치를 밟고 스타트 레버를 당기는 방식입니다. 키를 꽂아 돌리거나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레버를 당기는 감각은,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긴장감을 줬습니다.
에픽 GT1 주요 제원 요약
- 엔진: 로시(Roush) H4 5.4L V8 슈퍼차저, 최고출력 857마력
- 변속기: 6단 수동변속기(미드십 레이아웃)
- 제로백: 3.1초
- 섀시: 카본 터브 + 알루미늄 프레임
- 서스펜션: 푸시로드 타입(전·후륜)
- 휠: BBS 19인치, 타이어 345/35/19

하이퍼카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하는 이유
에픽 GT1을 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부분은 이 차를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하느냐는 문제였습니다. 처음엔 일반 양산차와 같은 눈높이로 트렁크 공간도 없고 수납함도 없고 승차감도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관점 자체가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슈퍼카와 하이퍼카는 단순히 출력 숫자로 구분되는 게 아닙니다. 슈퍼카는 데일리카로서의 편의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반면, 하이퍼카는 편의 장비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주행 그 자체에 집중한 결과물입니다. 실제로 이 차에는 별도의 트렁크 공간이 없습니다. 처음엔 설계 미비처럼 보였는데, 이런 차를 소유하는 사람은 대부분 전용 차고지가 있어 지붕 패널 같은 부품을 차 안에 싣고 다닐 이유 자체가 없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애초에 다른 기준으로 만들어진 차라는 거죠.
자동차 산업 측면에서도 에픽 GT1의 탄생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집니다. 국내에서는 규제 환경 때문에 개인이 자동차를 양산 목표로 개발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습니다. 에픽 GT1이 전 세계 단 한 대로 남은 이유도 그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신규 인증 절차는 대규모 투자가 전제되어야 할 만큼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출처: 한국자동차연구원). 그럼에도 이 차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상적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라는 말을 쓰기엔 주행 경험은 없습니다. 그러나 운전석에 앉아 레버를 당겨 시동을 걸고, 배기음과 기름 냄새가 섞여 올라오는 그 순간만큼은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차와도 달랐습니다. 요즘 전동화 흐름 속에서는 다시는 나오기 어려운 종류의 감각이었습니다. 드마크로스는 현재 전기 오토바이 브랜드 컴파스 로즈(Compass Rose)도 운영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도 지켜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에픽 GT1은 실제로 도로 주행이 가능한 차인가요?
A. 양산을 목표로 설계된 차이기 때문에 방향 지시등, 와이퍼, 에어컨 공조기 등 도로 주행에 필요한 기본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2년 국내 서킷 행사에 직접 출전한 이력도 있습니다. 다만 국내 인증 환경의 한계로 현재는 공식 도로 주행 인증 차량은 아닙니다.
Q. 멀티매틱이 만든 거면 사실상 캐나다 차 아닌가요?
A. 일반적으로 제조사가 만든 차라는 인식이 있지만, 에픽 GT1은 다릅니다. 전체 디자인 스케치와 구성 방향은 허자홍 대표가 직접 제시했고, 멀티매틱은 그 설계를 현실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기획·철학·방향이 국내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국산 하이퍼카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Q. 카본 터브 구조가 왜 안전에 유리하다는 건가요?
A. 카본 터브는 탄소섬유 강화 복합재로 운전석 주변을 일체형으로 감싸는 구조입니다. 충돌 시 앞뒤 알루미늄 크럼플 존이 충격을 흡수하며 분리되더라도 운전자가 앉은 카본 터브 내부는 형태를 유지합니다. F1을 비롯한 레이싱카에서 수십 년간 검증된 안전 구조입니다.
Q. 에픽 GT1 현재 가격은 얼마나 될까요?
A. 2010년 출시 당시 목표 가격은 16억~17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전 세계 단 한 대인 데다 국산 하이퍼카라는 역사적 희소성까지 더해져, 현재 시장 가치는 당시 기준가보다 상당히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공개 거래 이력이 없어 정확한 현재 가치 산정은 어렵습니다.
결론
에픽 GT1을 실물로 보기 전까지 저는 이 차를 부유한 개인의 호기로운 프로젝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카본 터브 섀시, 푸시로드 서스펜션, 레이싱카 방식의 배터리 킬 스위치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돈만으로는 이 디테일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수십 년간 자동차를 공부한 사람의 관점이 곳곳에 녹아 있었습니다.
자동차가 이동 수단이라는 전제에서 보면 에픽 GT1은 불편하고 비실용적인 물건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오랜 꿈이 실제 자동차로 구현된 결과물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이 차는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입니다. 이 차에 관심이 생겼다면 드마크로스의 전기 오토바이 브랜드 컴퍼스 로즈까지 함께 찾아보는 것을 권합니다. 같은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게 느껴집니다.